아도르노의 자율성

일상 2017. 9. 29. 19:40


아도르노의 자율성에 대한 주장은 결국 예술이 사회성에 도
달하는 하나의 방식임을 알 수 있다. 아도르노에게 “예술은 사회에 대한
사회적 안티테제”이다. 그러나“사회로부터 직접 연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를 이루는 나눌 수 없는 단위의 개체이며,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전체를 반
영한다. 이러한 인용으로 아도르노가 생각하는 예술과 사회는 등가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비유는 예술이 곧 사회의 구조와 같은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외부 사회로의‘창문’이 없어도 자신의 내재적 법칙으로
대변한다는 것이다. 예술은 사회에 대해서 부정성을 가지면서 존재하지만,
직접적으로 사회에 관계되는 것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내적 요인
들의 관계로 표현되며, 예술의 부정성은 은폐된 형태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아도르노의 예술의 자율성에 대한 개념은 그의 참여예술과 사회주의 리
얼리즘에 대한 비판에서 좀 더 명확해진다. 참여 예술이 자율성을 부인함으
로써 아도르노가 부정하는 사회에 편입될 수 있는 가능성을 허용하는 것으
로 보았다. 사회에 대한 예술의 저항은 철저히 개인의 자발성을 통한 초월
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럼으로써 예술이 하나의 정치선
전 같은 것으로 환원되지 않으며, 양자택일의 수준을 넘어 다의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루카치(Gyorgy Lukacs)는 사실주의적 예술작품을 미학적 규범으로서 고
수하면서 현대의 모더니즘 예술에 대해“주관적인 퇴폐주의”104)로 규정했
다. 이에 반하여 아도르노에게 현대의 모더니즘 예술은“오늘날의 세계상황
을 진실하게 표현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105)이며, 그 자체로 역사적 객관
물이 된다. 아도르노는 예술은 현실을 사진 찍듯이 혹은 원근법적으로 모사
함으로써 인식하는 것이 아니고, 예술은 자율적 구조를 통해 현실의 경험적
형태에 의해 감추어져 있는 것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런 맥락
에서 그는 사회적 인간관계로부터 유리된‘고독’한 인간을 다루는 현대문
학을 퇴폐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루카치의 관점에 대항한다.106) 아도르노는
‘고독’이 단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이며 역사적인 문제로 진단
하기 때문이다. 그는 루카치가 옹호하는 사실주의 작품들에 대해서“이제
거의 무의미하게 된 명목적인 질서를 다시 추구”107)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이러한 퇴행은 이데올로기로서 의심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아도르노의 자율적이며 사회적인 예술은 현실에 과연 실천적인 역
할을 할 수 있는가 또한 그 실천은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는『미학이론』(Asthetische Theorie, 1970년 )에서 다음과 같이밝힌다.



WRITTEN BY
안소민
메이데이!메이데이!

,